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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30. Friday

김옥선 할머니와 강주혜 사무국장님의 말씀에 대한 요약 혹은 디브리핑

제목: Korean Comfort Women; Survivors of Military Sexual Slavery Speak Out
일시: 3월 30일 오후 1시 30분 - 오후 3: 30분
장소: 5층 라운지. School of Social Work,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인원: 대략 50명, 생각보다 한국 학부생들이 많이 왔고, 외국인들도 한 절반 정도.

김옥선. 1932년 안동 출생. 16살에 일본 순사에게 강제로 끌려가 부산항에서 타이완으로 실려가 전쟁이 끝날때까지 8년동안 강제로 위안부 생활에 동원됨. 위안부 생활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로 자궁을 들어내었다. 현재 경북 예천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음.

16 살에 친구 정남이랑..15명이 타고 있는 도라꾸에..강제로 태워짐..재수없이 잡혔다... 부산. 배. 날 짐승이 날아다니고 물이 하늘 꼭대기에 닿는 곳에 실려서.. 밤 사흘 낮 사흘 지나 대만에 도착...실려온 17명중에 10명을 추려서 남안군도로 배를 태워 보냈다....나와 정남이는 남았다. 구멍도 없는 것을 붙혀 주었다고 일본군이 이야기...나는 늦자라서 쪼만했다... 꼼짝마라..죽었다. 소변도 고통스럽고..쉬고 싶은데 밖을 보니 일본군이 줄을 서가있더라...그 사람들을 다 받아내어야 한다...밤도 없고 낮도 없고 교대로 교대로 받아내다...50명. 60명. 70명. 까무러치면 물 퍼붓고...맞고...그 군인들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니까..여자 보고 가라꼬 그란다...평일 400명...주말 1000명도 왔다. 100명을 받은 이쁘게 생긴 처자는 죽었다. 우유처럼 허연기 있더라... 목 매 죽고, 미쳐서 죽고 그래도 때릴 수록 내가 강해진다....지금까지 약 안 먹으면 못 산다...성폭행...한 사람한테 우야다가 한두번 했다고 치자...한사람을 데리고 7-8년을 그랬으니..그건 성노예다. 하루에 79명을 받았는데도 뭐가 많으냐고 하더라. 전쟁에서 밀리니까..연합군이 밀려 오니까 더 지랄. 환장하더라. 우리 둘째 오빠도 노무자로 가서 죽었다. 큰 오빠는 징용 피하러 경기도로 가서 숨어지내다가 결국, 나중에는 탄광에서 죽었다. 둘째 오빠는 오키나와에서 죽었다. 촌사람들 쌀이고 숟가락이고 다 들고 갔다. 군화발로 턱 쪼가리를 막 쳤다. 남안군도로 간 10명을 다 죽고 7명 중에 나하고 정남이만 남았다. 히로히토가 라디오 방송을 할려고 하는데...일본이 지는 갑다 하니까. 긴 칼 찬 대위가 날 죽일려고 하더라...그래서 내가 틀리면 나를 죽이고 내가 맞으면 니를 죽일끼다 했다....이판사판...죽기 아니면 살기...막 때려요...니 죽는데이..가만히 있거라..있거라 해요...뭐 맞으면 자뿌러지는기지...지금도 눈에 선하다...마흔 대여섯살 된 소령이 있었는데...그만 때리라카데...내 나이하고 비슷한 딸이 있단다. 전쟁에 져서 막판이 되자 칼을 던져주고 자살하라고 한다...우리 아버지가 내가 살아오라고 8년을 빌었단다....내 한테 죽으라고 칼 준 그 군인은 나중에 들었는데 자살했단다... 내 하고 정남이는 산에 숨었다....십리 이십리 걸어가서 음식 구하러 내리갔다...일본놈이라고 밥을 안준다...korean 이라고 이야기는 하는거는 배워가꼬...그래 이야기 하니까 밥을 주더라...그 동네는 귤. 바나나. 파인애플. 바가지 같은 야자도 많고...사람들은 우와기는 입었는데...기지로 아래도리 두르고...맨발로 다니더라. 일본 군대로 간 한국 사람을 만났다...네 사람인데..두사람은 평안도 사람. 두 사람은 마산 사람인데....꼴은 거지 같이 해가꼬...보자마자 동상들 조선사람 아이가...하고 묻더라...한국이 독립이 되었다고 이야기 해 주더라....같이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묵고 물만 묵고 길을 나섰다. 마산 사람이 그라더라...동상들은 몸을 배리가꼬 고향에 우예가노...일주일만에 아주 오래된 배를 하나 구했다....어찌어찌해서 부산에 도착했다...도착하니까 돌림병이 돈다꼬..사흘동안 배안에서 있으라 카더라...사흘을 굶었다...부둣에 내리니까..노부부가 점방을 하나 하고 있는데...영덕사람이란다...무남독녀가 내 처럼 끌리가가꼬 오늘까지 안 온단다....영덕에서 몽땅 정리하고 딸 기다린다꼬...부둣가로 옮겼단다....그때까지 안오먼 죽은기지 뭐. 가랭이에 고름집이 생기가꼬...아빠 엄마가 고치주께 그랬는데....수술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의사가 치료가 안되는 기라 그러더라....폭력이 아니고...사람 죽으라고 하는 짓이야. 사람 사는 것이 아니야...바쁜데 이리 와줘서 고마워요.

강주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국장.

이런 모임이 있으면 항상 마음이 무겁다. 편히 쉬셔야 할 할머니가 이런 긴 여행과 이벤트를..그리고 아픈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어렵다.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범죄. 군인들의 사기진작과 안전한 성욕해소를 위해서 위안부를 동원했다. 남아있는 군의관의 기록을 보면 위안부를 '천황의 선물' '성배설을 위한 위생적인 변소'라고 했다. 주로 11세에서 27세의 여성이 끌려갔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면 항상 데리고 갔다. 죽거나 버려졌다. 전쟁 후 해결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연합군도 아시아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한국 사회의 변화..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정도의 토양이 마련되었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17년동안 활동해 오면서 일본정부의 대응은 한번도 없었다. 일본정부 대 정신대할머니. 아시아 여성의 구도는 아니다. 인권의 문제다. 60년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현재 진행형...1992년 부터 수요집회 해오고 있고...희망. 관심 지지....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국 하원에서 의결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4월중에 아베가 미국에 오는데 아마 통과 되지 않도록 노력 할 것 같다. 지금 한국에 김옥선 할머니 같으신 분이 120분 정도 계시는데...김옥선 할머니가 그래도 가장 건강하신 편에 속한다...우리 같은 활동가들이 이야기 하는 것과 피해자이신 할머니가 목소리 내시는 것과는 다르다...힘겹지만 우린 이길을 계속 간다. 할머니의 마지막 불꽃....현재 한국. 대만. 중국에서 위안부로 끌려가신 분들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 기념관 등을 계획하고 있고..일본에는 조그마한 자료관 설립이 진행되고 있다.

객석 질문:

1.정남이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어요?
몸도 약하고..마음도 약해서..결국 미칬다.

2. 정부에서 할머니들에 대해서 특별하게 해 주는 것이 있는가?
특별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사무국장)....할머니가 노무현 대통령...하시다가 말을 멈추셨다.

3.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영화나 비디오. 책. 영상자료 같은 것은?
오늘 여건상 다른 곳에서 본 비디오를 보지 못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다 한국어다....영어로 된 책이 하나 있었는데...절판되어 이제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4. 할머니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유학생들은 거쳐 가는 사람들이지만 소규모의 그룹으로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어보고...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좋겠다...(듀크 여성 센타 직원이 말하길) 박물관이나 기념관 짓는 데 도네이션 하는 것도 좋고.....

5. 할머니 예천에서 혼자 사시는데 평소에 주로 우예 지냄니꺼?
하는 것 없어요....약 안먹으면 죽는데.....45년 정도 살아왔으니 친구들 주로 만나고....구청...복지과...요새 구청에 복지과 있잖아요 (복지관을 말씀하시는듯)...거 나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