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ris Jordan | Main | 소고기 그림 »

2007.08.25. Saturday

마한주의 (Mahanism)

일 다녀와서 잠시 누웠는데 아침에 일어났다. 이른 아침도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한국 DMZ, 그 자연사적 탐방]을 가볍게 쭉 한번 봤다. DMZ가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는'는 거짓말은 믿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막연히 있는 그대로의 자연생태계의 보고니 하는 것은 오해이니 머릿속에 있는 DMZ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 한다. DMZ는 살아 있는 전쟁 박물관, 냉전 사회학 교실, 한국사의 현장, 근대사의 증언대 그리고 냉전자연생태계 공원으로서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른바 DMZ에 관한 입문서로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유럽이 한반도를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은 1810년대였으며, 이 당시 그들이 조선의 후두부라고 생각한 곳은 해주, 인천, 그리고 아산만이었다. 프랑스와 미국이 각각 인천을 주목하여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971)를 일으킨 곳이 곧 강화 일대였고, 독일은 아산만을 주목했다. 유독 영국은 해주만과 그 일대의 섬을 주목해, 1816년에 홀(B. Hall)이 이끄는 선단이 이곳을 탐사했고,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제임스 홀 군도(Sir, James Hall Group)라고 명명한 일이 있었다.
        그 후 미국이 한반도 운명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이 서해 5도를 주목한 것은 한반도의 분할을 구상할 무렵이다. 1945년 8월을 전후하여 미국의 국무성, 국방성, 정보기관, 그리고 태평양 사령부가 각기 한반도 분단의 지도를 그리고 있을 때 유독 국방성 작전국은 이 서해 5도를 주목하여 서쪽 끝은 북위 38도 10분 (장산곶)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는 북위 37도 40분(주문진)에 이르는 서고동저의 빗금을 분할선으로 그렸다. 그들이 옹진반도를 이토록 중요시 한 것은 바로 이 서해 5도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미국의 해군사관학교 교장 마한(Alfred Mahan)의 논리에 따라 "육지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바다(섬)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전략에 기초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해상권이 역사에 미친 영향(Influence of the Sea Power upon History, 1918)]이란 명저를 쓴 이다. 미국의 이 같은 대극동 전략은 맥아더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는 것이 곧 애치슨(D. Acheson) 방위선이다. 그들은 극동이야 말로 늪(Swamp)이므로 육지에 상륙하여 접촉성 피부염에 감염되는 일은 가급적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구리 착지점(Frog jumping point)처럼 섬을 잇는 고리에 의해 극동을 방어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더라도 섬의 고리 (Pacific lake surrounded by chain of islands)를 기지로 한 해상전략으로 극동에서의 국익을 지킬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대한 방위전략은 한국전쟁의 휴전 회담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당시 휴전선은 육지에만 확정되었을 뿐 해상으로 연장하여 획선 되지 않았다. 이때 문제가 된 곳이 바로 서해 5도였다. 그런데 이 도서에 대한 공산 측과 미국 측에는 엄청난 시각의 차이가 있었다. 즉 북한의 대남전략은 남한의 빨치산과 이를 지원하는 지상군 개념에 몰두하고 있었고, 미국은 마한의 전략에 따라 서해 5도를 장악하는 것으로써 향후에 일어날 군사 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절묘한 것은 당시 UN군 측 수석대표가 극동군 사령부 함대 사령관이었던 터너 조이(C.T. Joy)제독이었는데 그는 철저한 마한주의자(Mahanist)였다. 그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서해 5도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UN군 측의 수석대표는 해리슨(W.K. Harrison)중장으로 교체됐다. 그러나 이 정신은 그대로 승계돼 해리슨은 마한과 같은 의지를 가지고 회담에 임했고, 미국의 이러한 전략을 간파하지 못한 북한의 수뇌부는 향후에 있을 서해 5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UN군 측 제안에 별 뜻 없이 동의했다.
        그 결과 최종협정서에는 휴전선 조항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은 별도 조항(제2조 13항의 B)에서 "황해도와 경기도 도계선의 북방 및 서방에 있는 모든 도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군 최고사령관의 군사 지휘하에 둔다"고 규정해 놓고서도, 그 단서에 "단,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이 규정에 의하지 아니한다"고 합의했다. 북한이 이 대목에서 스스로의 실수를 깨닫고 후회한 것은 남한에 대한 무장간첩의 침투가 본격화되고 한국 측에서 서해 5도에 미사일을 배치하여 요새화하기 시작한 1970년대 들어서 이다. 장산곶에서 백령도를 바라보면 마치 목에 비수를 겨누고 있는 것과 같은 지형 때문이다.
        미국 국방전략의 기저가 되고 있는 마한주의(Mahanism)는 휴전선과 DMZ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pp 37-39)

정전협정, 제2조 13항 B

(b) Within ten (10) days after this armistice agreement becomes effective, withdraw all of their military forces, supplies, and equipment from the rear and the coastal islands and waters of Korea of the other side. If such military forces are not withdrawn within the stated time limit, and there is no mutually agreed and valid reason for the delay, the other side shall have the right to take any action which it deems necessary for the maintenance of security and order. The term "coastal islands", as used above, refers to those islands, which, though occupied by one side at the time when this armistice agreement becomes effective, were controlled by the other side on 24 June 1950; provided, however, that all the islands lying to the north and west of the provincial boundary line between HWANGHAE-DO and KYONGGI-DO shall be under the military control of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ommander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except the island groups of PAENGYONG-DO (37 58' N, 124 40' E), TAECHONG-DO (37 50' N, 124 42' E), SOCHONG-DO (37 46' N, 124 46' E), YONPYONG-DO (37 38' N, 125 40' E), and U-DO (37 36'N, 125 58' E), which shall remain under the military control of the Commander-in-Chief, United Nations Command. All the island on the west coast of Korea lying south of the above-mentioned boundary line shall remain under the military control of the Commander-in-Chief, United Nations Comm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