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트루니에 - 목욕과 샤워
우리는 매일 아침 베헤모트와 가네사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가 물과 맺고 있는 내밀한 관계 안에서, 우리는 거대한 두 마리의 신화적 후피 동물, 베헤모트와 가네사 중에서 한 마리를 선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욥기에 나타나 있는 베헤모트에 대한 열정적인 기록 안에서 쉽게 하마의 모습을 찾아내게 된다. 베헤모트는 버드나무 그림자에 덮여 늪의 비밀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베헤모트는 수련과 갈대 한가운데 누워 있다. 놈은 요단 강 물이 불어나 콧구멍까지 차올라오거나 말거나 무서워 하지 않는다.
코끼리 신인 가네사는 코로 물을 뿌려서 몸을 씻기도 하고,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이 신화적 동물의 행태 안에서 우리가 맨 앞에 내세워야 하는 것은 행동적 원칙이다. 가네사의 발목에는 동물들 중에서 제일 바지런히 싸돌아다니는 지칠 줄 모르는 쥐가 매달려 있다. 가네사는, 행동이 몽상의 맞은편에, 샤워가 목욕의 맞은편에 놓여 있는 것 처럼 베헤모트에 대치된다.
당신은 목욕 쪽인가, 샤워 쪽인가? 이 양자택일의 성격학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다.
당신은 목욕 쪽이라고? 좋다. 그렇다면 당신은 수평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당신은 향수가 뿌려져 있고, 거품이 이는, 즉 뿌연 또는 불투명하기까지 한 따뜻한 물 속에서 꿈꾸듯이 가만히 흔들린다. 당신은 눈을 감고 있다. 그러나 조심하기 바란다. 당신은 무방비 상태이고, 허약하며, 온갖 종류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마라는 욕조 안에 있다가 샤를로트 코르데의 칼에 찔려 죽었다. 샤워를 하고 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얘기를 좀 더 멀리까지 진행시켜 보자. 당신은 퇴행 상태에 놓여 있다. 당신은 양수 속에서 떠돌고 있는 태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욕조는 어머니의 배, 따뜻하게 맞아 주고 지켜 주는 부드러운 집이다. 당신은 욕조에서 나와야 하는 시련의 순간을 고통스러워하며 지연시킨다. 그건 마치 잔인한 출산의 순간과도 같다. 차갑고 단단한 타일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는 당신의 물렁물렁해진 벌거벗은 몸이 바깥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반대로 샤워를 하는 사람은 서 있다. 맑은 물이 목욕하는 사람을 채찍처럼 후려 갈긴다. 그는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하루를 향해 돌진한다. 그는 씩씩하게 비누칠을 하고, 힘든 운동 경기에 나가기 전에 운동 선수처럼 몸소 마사지를 한다. 그는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거울이 자신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되돌려보내는 것이 싫지 않다.
이상적인 샤워는, 깨끗한 만년설이 녹아 험준한 바위 골짜기 사이로 펑펑 쏟아지는 급류를 맞으며 하는 샤워이다. 미네랄워터 광고는 이 활기차고 퓨리턴적인 신화로부터 푸짐한 영감을 얻어낸다. 이 물을 마시는 것은, 소비자의 몸 속을 샤워시키는 것이며, 몸 속에다가 일종의 내적 세례를 베푸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샤워 꼭지에서 쏟아지는 맑고 흐르는 물에는 세례의 의미가 덧붙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화들이 보여 주는 것 처럼,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예수에게 세례를 줄 때, 그는 예수에게 샤워를 시켰지 목욕을 시켰던 것이 아니다. 샤워를 하면서, 죄인은 자신의 죄로부터 씻김을 받고, 자신의 몸에 원초적인 순결성을 되돌려준다. 샤워하고 있는 사람은 깨끗함 - 그 모든 도덕적 광채와 더불어 -에 대한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목욕하는 사람은 깨끗함 따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으로 샤워는 좌파 쪽에, 목욕은 우파 쪽에 위치해 있다. (미셀 투르니에, 목욕과 샤워, 생각의 거울, 53-55쪽, 북라인)
우리는 욥기에 나타나 있는 베헤모트에 대한 열정적인 기록 안에서 쉽게 하마의 모습을 찾아내게 된다. 베헤모트는 버드나무 그림자에 덮여 늪의 비밀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베헤모트는 수련과 갈대 한가운데 누워 있다. 놈은 요단 강 물이 불어나 콧구멍까지 차올라오거나 말거나 무서워 하지 않는다.
코끼리 신인 가네사는 코로 물을 뿌려서 몸을 씻기도 하고,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이 신화적 동물의 행태 안에서 우리가 맨 앞에 내세워야 하는 것은 행동적 원칙이다. 가네사의 발목에는 동물들 중에서 제일 바지런히 싸돌아다니는 지칠 줄 모르는 쥐가 매달려 있다. 가네사는, 행동이 몽상의 맞은편에, 샤워가 목욕의 맞은편에 놓여 있는 것 처럼 베헤모트에 대치된다.
당신은 목욕 쪽인가, 샤워 쪽인가? 이 양자택일의 성격학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다.
당신은 목욕 쪽이라고? 좋다. 그렇다면 당신은 수평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당신은 향수가 뿌려져 있고, 거품이 이는, 즉 뿌연 또는 불투명하기까지 한 따뜻한 물 속에서 꿈꾸듯이 가만히 흔들린다. 당신은 눈을 감고 있다. 그러나 조심하기 바란다. 당신은 무방비 상태이고, 허약하며, 온갖 종류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마라는 욕조 안에 있다가 샤를로트 코르데의 칼에 찔려 죽었다. 샤워를 하고 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얘기를 좀 더 멀리까지 진행시켜 보자. 당신은 퇴행 상태에 놓여 있다. 당신은 양수 속에서 떠돌고 있는 태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욕조는 어머니의 배, 따뜻하게 맞아 주고 지켜 주는 부드러운 집이다. 당신은 욕조에서 나와야 하는 시련의 순간을 고통스러워하며 지연시킨다. 그건 마치 잔인한 출산의 순간과도 같다. 차갑고 단단한 타일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는 당신의 물렁물렁해진 벌거벗은 몸이 바깥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반대로 샤워를 하는 사람은 서 있다. 맑은 물이 목욕하는 사람을 채찍처럼 후려 갈긴다. 그는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하루를 향해 돌진한다. 그는 씩씩하게 비누칠을 하고, 힘든 운동 경기에 나가기 전에 운동 선수처럼 몸소 마사지를 한다. 그는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거울이 자신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되돌려보내는 것이 싫지 않다.
이상적인 샤워는, 깨끗한 만년설이 녹아 험준한 바위 골짜기 사이로 펑펑 쏟아지는 급류를 맞으며 하는 샤워이다. 미네랄워터 광고는 이 활기차고 퓨리턴적인 신화로부터 푸짐한 영감을 얻어낸다. 이 물을 마시는 것은, 소비자의 몸 속을 샤워시키는 것이며, 몸 속에다가 일종의 내적 세례를 베푸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샤워 꼭지에서 쏟아지는 맑고 흐르는 물에는 세례의 의미가 덧붙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화들이 보여 주는 것 처럼,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예수에게 세례를 줄 때, 그는 예수에게 샤워를 시켰지 목욕을 시켰던 것이 아니다. 샤워를 하면서, 죄인은 자신의 죄로부터 씻김을 받고, 자신의 몸에 원초적인 순결성을 되돌려준다. 샤워하고 있는 사람은 깨끗함 - 그 모든 도덕적 광채와 더불어 -에 대한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목욕하는 사람은 깨끗함 따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으로 샤워는 좌파 쪽에, 목욕은 우파 쪽에 위치해 있다. (미셀 투르니에, 목욕과 샤워, 생각의 거울, 53-55쪽, 북라인)